하루 또 하루

제목:불공평이 아니고, 긍휼을 베푸심이다

제12일
로마서 9:14~18
불공평이 아니고, 긍휼을 베푸심이다

하나님의 주권 행사는 긍휼의 실현이다 (9:14~16)
앞에서처럼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한다면, 즉각적으로 두 가지의 반론이 제기될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불공평하시다는 것이고, 둘째는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책임을 그들에게 물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는 14절 이하에서 첫째 반론을 다루면서, “하나님은 공평하지 않으시다”는 반론을 “그럴 수 없느니라(14절)”는 강한 어조로 거부합니다.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구원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은 사람의 요청이나 사람의 어떤 행위를 근거로 한 것이 아니고(16절), 오직 하나님의 긍휼의 원리에 따른 주권적 행위임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은 하나님의 불의하심의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심의 증거인 것입니다. 자기의 죄 값으로 멸망하게 되었으므로 아무도 구원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이 공의로운 처사일 것이지만, 그 가운데 얼마를 건져내시기로 작정하신 것은 전적으로 긍휼의 은총인 것입니다.

■ 더 깊은 묵상
당신은 죄 값으로 멸망당한 상태 그대로 놔두셔도 할 말이 없는 처지인데, 오히려 긍휼히 여기셔서 영원한 형벌 가운데서 건져내주시는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죄를 조성하시지 않는다 (9:17~18)
바로의 사건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은 특정한 인물 바로를 특정한 때에 특정한 위치에 두어 구원사에 있어서 특정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시고, 자신의 이름이 온 땅에 알려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17절). 하나님은 하시고자 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시고자 하는 자를 강퍅케 하시는 것입니다(18절). 그러나 강퍅하게 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이 죄를 조성하는 분이라는 의미보다는, 바로를 그의 죄악과 본성대로 내버려두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바로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지도 않으셨으며, 동시에 고의적으로 죄악을 조성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의 행위는 사람의 어떤 결정이나 행동에 얽매이지 않고 주권적인 자유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가 그러한 주권적 선택이 왜 정당한 것인가를 논증하지 않는 것은, 사도의 목적이 왜 그것이 정당한가를 이해시키려는 데 있지 않고,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말하는데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 더 깊은 묵상
당신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에 대하여 합리성이나 정당성이 납득되어야 받아들이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순종하며 따르는 사람입니까?

정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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