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또 하루

제목:열심이라고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제15일
로마서 10:1~13
열심이라고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잘못된 열심 (10:1~7)
사도는 이스라엘이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지적합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좇지 않고,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좇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열심이 부족하여서가 아니라, 잘못된 열심을 내고 있어서 문제입니다. 모든 사람은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심으로 율법의 마침이 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의에 이르게 된다는 진리를 알지 못하고, 율법을 행함으로써 자기 의를 세우려고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의를 이루겠다고 열심을 낼수록 사실은 하나님을 더 거역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율법이 요구하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산다는 것이 모세 율법의 선언이지만, 문제는 율법의 의를 완전하게 행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이 이루신 의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 진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진리를 오해하고 왜곡하여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잘못된 열심을 낸 것입니다.

■ 더 깊은 묵상
당신은 복음과 진리에 근거를 둔 열심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판단과 고집에 따른 잘못된 열심을 냄으로써 실제로는 오히려 하나님을 거역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길에 서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10:8~13)
사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라고 할 때, 믿는다는 것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가를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믿음의 말씀, 곧 복음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8절), 예수를 입으로 시인하는 것(9절),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것(9절),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마음으로 믿는 것(9절), 예수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10절), 예수를 믿는 것(11절),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13절) 등입니다. 결국 사도는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고 할 때, 그것은 무엇보다도 예수를 믿는다는 것임을 전제하면서,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를 믿는 것이 되는 것인가를 다양한 방식으로 분명히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사도는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다는 것이 갖는 중요한 의미를 분명히 합니다. 그것은 율법을 가진 유대인이나 율법이 없는 헬라인이나,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차별이 없이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11-13절).

■ 더 깊은 묵상
당신은 마음으로 예수를 믿고 당신의 주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입으로 시인합니까?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성령님의 은혜의 역사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감사합니까?

정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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