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또 하루

제4일

로마서 7:13~25

둘 사이에 끼인 자의 탄식과 감사

의를 행함에 있어서 한없이 무능한 존재 (7:13~ 23)

죄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율법의 무능함을 논하던 사도는, 이제는 죄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자신, 곧 우리 인간의 무능함을 확인합니다. 율법이 무엇을 요구한다 할찌라도 우리가 그것을 다 행할 능력만 있다면 문제가 없을 것인데, 우리의 무능함이 또 다른 문제인 것입니다. 죄가 율법을 이용하여 죽음을 가져올 수 있게 된 것은, 인간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사도는죄를 행하지 않고 의를 행하는 데 있어서 인간이 얼마나 무능한가를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처절하게 증거합니다(15-23절). 의를 행하려는 소원을 품어도 어느덧 죄를 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뿐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자기가 소원하는 대로 선을 행할 능력이 근본적으로 없는 것입니다(21절). 사도 자신의 모습을 통하여 본문에 투영된 고뇌하는 인간이 회심전의 인간인가, 회심후의 인간인가를 불문하고, 인간은 율법의 요구를 행하고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어찌할 도리가 없는 무능력자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 더 깊은 묵상

본문에 의하면, 원치 않는 악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행하고 있고,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는 당신 자신을 볼 때마다 당신이 깨닫고 확인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좌절에 찬 탄식과 밖으로부터 온 해결책 (7:24~ 25)

율법으로 말미암은 죄의 덫에 사로잡힌 무기력한 자기 자신의 현실을 발견한 사도는 거의 본능적으로 좌절에 찬 탄식을 쏟아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24절). 그러나 죄와 죽음에 얽매여 있는 비참한 자기 모습을 깨닫고, 그러한 상태로부터의 구원을 울부짖는 상태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한편으로는 얼마나 큰 은혜인 것입니까! “누가 나를 건져내랴?”는 질문은 “누군가 나를 건져내줄 자가 혹시 있을런가?”하는 궁금증의 표현이 아닙니다. 죄와 그로 말미암은 사망의 세력을 벗어날 수 없는 비참한 상태에 있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탄식입니다. 그러나 다음 절을 보면 사도는 “누가 건져내랴?”하고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께 감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사실 이것은 죄의 삯인 사망으로부터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으로 건져냄을 받은 우리 모두의 감사 선언인 것입니다.

■ 더 깊은 묵상

당신은 언제 자신이 아무리 안하려고 결심을 해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 죄를 범할 뿐, 원하는 선을 행할 능력은 도무지 없는 무능력자라는 사실을 발견합니까? 그런 상황에 닥치면 당신은 어떻게 합니까?

정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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