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또 하루

제목:하나님은 누구시고, 우리는 누구인가?

제13일
로마서 9:19~24
하나님은 누구시고, 우리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주권 행사에 누구도 대항할 수 없다 (9:19~21)
사도는 바로 왕의 경우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만약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선택하지 않기로 결정하셨다면 그들이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책임을 그들에게 물을 수 없는 것 아니냐며 따지는 반론(21절)에 대하여 단호한 입장을 취합니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힐문한다는 것은 계속하여 시비를 걸며 따지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는 지은 자와 지음을 받은 물건, 그리고 토기장이와 질그릇의 관계를 예화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존재론적 차원에서 넘을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인간 존재는 하나님과 더불어 논쟁하거나 그의 뜻에 대하여 정당성을 요구할 수 없으며, 만약 그렇게 한다면 인간이 자신의 존재론적 차원에서의 위치를 망각하고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입니다(20-21절). 인간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달려있으며, 하나님의 주권은 자율성과 절대성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 더 깊은 묵상
당신은 당신이 처한 상황을 하나님에 대한 원망의 근거로 사용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고 기대를 갖고 받아들이는 계기로 사용하십니까?

하나님의 주권행사의 원리는 긍휼이다 (9:22~24)
하나님의 주권 행사의 근본 원리는 긍휼과 관용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스스로 범한 죄로 인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들, 곧“진노의 그릇”들에 대하여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며(22절), 그리하여 회개할 기회를 제공하시고, 또한 회개한 자를 기꺼이 용납하시는 것입니다(cf.벧후 3:9). 이“진노의 그릇”은 불신자들을 일컫는 것인데, 일차적으로는 불신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반대로, “긍휼의 그릇”은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도록 예비하신 신자들, 곧 유대인과 이방인을 불문하고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을 말합니다(24절). 하나님의 긍휼과 오래 참으심이 없다면, 우리에게도 소망이 전혀 없고 즉시라도 멸망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누구를 선택하고 누구를 거부했는가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집중하며 하나님께 경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은 진노가 아니라, 자비와 긍휼이며,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22-23절).

■ 더 깊은 묵상

정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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