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빌레몬서 – 큰 그림보기(2/9)

1. 사람은 변할 수 있다

본문이 제시하는 그림에 주목하기

우리는 본문의 한 부분 한 부분을 살피기 전에 우선 빌레몬서 전체를 한편의 그림을 보듯이, 혹은 한 편의 연극을 보듯이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바울서신들을 접근할 때 흔히 취하는 방식은, 사도가 다루고 있는 신학적 주제가 무엇인가에 관심을 쏟는다. 그리하여 본문을 심오한 신학적 개념과 깊은 논리의 신학서적이나 신학 논문을 다루는 자세로 접근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자칫 바울 서신이 삶의 현장에서 드러내는 생생한 삶의 역동성을 잃게 한다. 그리고 메마른 신학강의나 요약된 신학 논문을 발표하는 것처럼 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그러므로 때로는 신학적 주제나 논리의 흐름이 아니라, 장면의 이동이나 사건 현장의 전개를 따라서 한편의 영화나 연극을 보듯이 본문을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빌레몬서를 읽을 때 여러 장면이 눈에 선한 모습으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선명하게 우리가 볼 수 있는 장면은 빌레몬의 집을 향하여 길을 떠나고 있는 오네시모의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바울을 떠나 자기가 도주해 왔던 주인 빌레몬에게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오네시모의 모습은 중요한 메시지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도망자 오네시모와 귀환자 오네시모의 대조적인 모습

오네시모가 바울의 권유를 받고 그가 써준 편지 한통을 들고 다시 자원하여 자기 발로 돌아가고 있는 그곳은 어떤 곳인가? 그가 도망하여 떠났던 옛 주인의 집이 아닌가? 도주한 노예가 옛 주인의 수하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다는 사실이 함축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곧 죽음이 아니었던가! 도주했다가 잡히면 사형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은 오네시모도 뻔히 아는 사실이다. 목숨을 걸고라도 벗어나고 싶어서 도망했던 그 노예의 자리로 그는 돌아가고 있다. 그것도 강제송환이 아니라, 자기 발로 걸어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있다. 오네시모의 이 모습에 주목하면서 저절로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인가? 그곳이 그렇게 싫어서 주인의 재물까지 훔쳐서 목숨을 걸고 그곳을 도주하는 이 전의 오네시모의 모습과, 돌아가면 잡혀서 죽음을 당할런지도 모를 위험한 그곳을 자기 발로 걸어서 다시 돌아가는 지금의 오네시모의 모습 사이의 극단적인 대조를 주목해보라. 거의 본능적인 의문을 불러일으키지 않는가? 무엇이 이러한 변화를 이루어낸 것인가? 빌레몬의 집을 도주하는 오네시모와 그곳을 향하여 다시 돌아가는 오네시모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무엇이 그를 이렇게 변하게 만든 것인가? 이것이 본문이 오네시모를 내세워 독자에게 유도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문을 접근하게 되면 우리는 중요한 메시지가 될 만한 답을 얻어가기 시작할 것이고, 그것은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게 된다.

극단적 변화의 결정적인 계기

극단적으로 대조를 이루는 오네시모의 두 모습 사이에는 다름 아닌 복음을 듣고 거듭나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 다시 말하면 예수를 만나는 사건이 그에게 일어났고, 그것이 오네시모를 이렇게 변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본문이 부각시키려한다는 것을 본문에서 확인하게 된다(10절). 복음의 능력, 예수를 만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놀라운 변화를 힘 있게 증거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를 만남으로 일어난 혁명적인 변화의 또 다른 성경의 실례로 마가복음 5장의 거라사의 군대귀신 들린 사람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자기를 향하여 다가오는 예수를 향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떠나가라고 거절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잠시 후에 그는 그 자리에서 그 입으로 예수를 평생 따라다니겠다고 받아달라고 요청한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이 같은 시간에 어떻게 이렇게 혁명적으로 바꾸어질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에게 나를 떠나라고 외치는 군대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에게 당신을 따라가고 싶으니 받아달라는 정신을 차린 사람이 되는 혁명적인 변화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예수님과의 만남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에 대하여 경계심을 갖고 대하다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아본 후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달려가서 사람들을 예수님에게로 초청하는 사마리아 여인도 떠올리게 한다.

오네시모에게 일어난 변화의 구체적인 내용들이 실제로 얼마나 감동적이며, 또한 놀라운 것들인지를 그에 대한 본문의 언급을 하나씩 짚어가면서 확인할 수 있다(11-13절, 15-16절). 이와 같이, 오네시모에 초점을 맞추어 삶이 혁명적으로 변한 모습을 부각시키고,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하게 되었는가로 넘어가면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만난 것이 결정적 원인이라는 결론으로 나아가면서 그러므로 사람은 변할 수 있으며, 그 변화의 결정적인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라는 적용적 메시지로 나아가도록 본문은 우리를 이끌고 있다. 그런가 하면 감옥에서도 오네시모에게 복음 전하기를 그치지 않아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함으로써 한 사람의 인생이 그렇게 변하는 계기를 만들어낸 바울에게 초점을 맞추어 본문을 읽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어떻게 해서 오네시모의 인생에 그러한 사건이 가능했는가라는 다음 단계의 질문으로 나아간 다음, 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애를 쓰는 사람 바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실을 근거로 한 사람이 복음을 듣고 거듭나게 하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를 강조하면서 스스로 도전하는 적용적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위와 같은 내용을 핵심으로 하여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관점을 갖고 그를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확인하는 데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정창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설교자하우스 대표)

정창균
Latest posts by 정창균 (see all)

그래도 의인은 제 길을 간다

세상이 이런데 언제까지 이러실 거냐고 따져 묻는 하박국에게 결국 하나님은 이렇게 되물으신 셈이었다. 세상이 이런데 너는 어떤 길을 갈 거냐고. 악인들로 세상이 뒤집어지고 있을 때 너는 어떤 길을 갈 거냐고. 그리고 하나님이 스스로 주신 답은 그것이었다. “의인은 그래도 제 길을 간다!” 세상이 어떻게 뒤집어져도, 신자는 여전히 제 길을 간다!

빌레몬서 본문묵상과 탐구(9/9)

바울이 받아들이고 있는 오네시모와 실제 그가 처하여 있는 법률적 사회적 상황에서 오네시모 사이에는 극심한 모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범죄하고 도주한 노예이지, 영원히 함께 할 사랑하는 형제는 아니다. 이것은 어떤 점에서 바울의 오네시모와 빌레몬의 오네시모 사이의 차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도 바울은 오네시모를 그가 처해있는 사회적 상황과는 전혀 다른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근거가 무엇인가?

빌레몬서 본문묵상과 탐구(8/9)

8절에 이르면서 사도는 본격적으로 빌레몬을 향한 용건을 밝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 편지의 남은 부분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8절을 “그러므로”로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앞에서 빌레몬에 대한 소문을 근거로 그를 칭찬했던 것도 사실은 이 용건을 효과적으로 성취하기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오네시모를 위한 부탁이었다.

빌레몬서 본문묵상과 탐구(7/9)

오네시모를 통해서도 빌레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빌레몬에 대한 소문을 들은 사도는 그에게 편지를 쓰는 용건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는 첫 마디에 감격에 차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기도할 때마다 너를 기억하고, 언제나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4절). 사도에게 있어서 빌레몬은 기도할 때마다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고 싶어지고, 그가 생각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가 터져 나오는 신자라는 것이다.

© Copyright - snthouse 성도와 신학 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