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빌레몬서 – 큰 그림보기(4/9)

죄수인 것이 자랑이 되는 더 근본적인 이유

그러나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사도가 “그리스도 때문이라면”,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그가 처한 현실이 어떤 처지이든지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호불호와 상관없이 자신은 그것을 자랑스러워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사도가 그렇게 하기로 결심을 했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이 신앙인의 도리이고, 신앙의 덕목이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리스도 예수가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다. 그가 빌립보서 3장에서 한 고백을 보면 이것이 확실하다. 육신의 여러 여건들을 앞세우며 자랑하고 그러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 다른 신자들을 무시하고 비난하는 자들을 향하여 사도는 단호히 말한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3절)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4절)” 결국 사도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 앞에서는 그들이 자랑하는 것들에 대하여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들은 자랑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언하는 것이다. 즉 바울로 대표되는 우리 그리스도인과 그들의 근본적인 차이는 누가 자랑거리가 더 크고 많은가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자랑거리로 여기는가의 문제, 즉 가치관의 문제인 것이다. 세상과 신자의 차이가 바로 이것이다. “내가 너희들이 자랑하는 것만큼 그것들에 대하여 내세울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는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너희들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사도는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이다.

사도의 선언은 계속 이어진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7-8절) ….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12절)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13절)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14절)“.

그러므로 사도가 모두가 자랑하는 것인데도 자랑거리로 삼지 않고, 창피하고 고통스러운 처지일지라도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당하는 현실이라면 오히려 그것을 자랑하며 사는 것은 그것이 규범이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바른 관계를 맺고 사는 삶의 자연스러운 열매라고 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교회 안팎으로부터 지독한 모욕과 비난을 받는 참혹한 처지에 있다. 이러핝 모욕과 비난의 핵심에는 신자가 신자답지 않고 교회가 교회답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깔려있다. 그리고 그러한 판단의 근거로는 신자와 교회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의 도덕적 파탄이 주로 들추어지고 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한국교회의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하여 도적수준을 높이고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여러 프로그램들이 제안되고 또 그를 위한 운동이 전개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교회 안팎으로부터 당하는 지독한 모욕과 비난은 우리가 도덕 수준이 저하되거나, 대사회적인 봉사의 행위들이 부족해서 된 일이 아니라, 신앙이 잘못되어 일어난 일이다. 즉 예수를 잘 못 믿어서 된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신자와 교회가 당하고 있는 문제를 극복하는 길은 어떤 일은 하지 말고 어떤 일은 하자는 캠페인이나 도덕재무장 운동을 펼치는 데 있지 않다. 신앙회복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즉 그리스도 예수와의 관계를 제대로 맺는 데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신자로 하여금 신자 되게 하고, 교회로 하여금 교회 다와 지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도 바울이 죄수가 되어서도 오히려 그것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그가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스러워하는 신앙인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삶은 그 신앙이 맺어낸 자연스런 열매였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저렇게 비도덕적이고, 교회도 저렇게 이기적인 것을 보면 신앙으로만 해결되는 문제는 아닌 것이 확실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은 무식한 처사다. 그것은 신앙으로만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증거가 아니라, 신앙이 잘못되었다는 증거인 것이다. 신앙을 입술의 말로 가장하고 사실은 신앙을 갖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말로는 예수님을 최고의 가치로, 최대의 자랑으로 삼는다고 하면서 실제 신앙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이어지는 그의 선언을 보면, 사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가 자랑스러운 정도가 아니다. 그가 이 땅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최고의 가치가 그리스도 예수이다. 그리고 그의 이 땅에서의 최고의 소원은 그리스도 예수를 더 아는 것이다. 그를 위하여 그는 만족함이 없는 욕구로 앞을 향하여 달려간다. 그리고 그가 장차 하나님 앞에서 받을 가장 큰 상으로 소망하는 것도 다름 아닌 그리스도 예수를 온전히 아는 것이다. 사도가 자기 평생에 사모하고 소원하며 그 상을 받기 위해서 이 땅에서의 달려가는 삶을 산다고 단호하게 밝히는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은 사실 다른 어떤 상급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말한다. 그에게는 그리스도 예수. 그를 온전히 아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상급이고 그는 그 상급을 바라보고 소원하며 이 땅에서의 삶을 달려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 때문이라면 약함이나 고난도 자랑거리라고 말하는 데서 한 걸음 더나아가 오히려 그것을 기뻐한다고 까지 말한다. 골로새서 1:24절에서 자신이 받은 고난을 두고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선언하는 사도 바울의 논리를 살펴보면 고난이 즐거움의 이유가 되는 그 모순을 가능케 하는 요인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는 괴로움마저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그 고난이 그리스도와 맺고 있는 의미와 역할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그가 당하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분명하게 선언한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이 말을 하기 전에 사도는 자기를 가리켜 복음의 일꾼(골1:23), 교회의 일꾼(1:25)이라고 한다. 이 말은 곧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사도에게 있어서 복음은 그리스도의 복음이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교회)를 위하여 그가 당하는 괴로움은 곧 그리스도를 위하여 당하는 괴로움이요,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괴로움이다. 그러므로 사도에게 있어서 교회를 위하여 당하는 고난은 그냥 괴로움이 아니다. 감옥에 갇힌 것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것”이듯이 교회를 위하여 당하는 괴로움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당하는 괴로움”이다. 사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기 위하여 살기도 등등한 모습으로 다메섹으로 가다가 길바닥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처음 만나고 회심한 사람이다. 예수를 처음 만난 그 길바닥에서 그는 예수님을 향하여 당신은 누구인가고 물었었다. 그리고 그가 즉석에서 받은 대답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는 대답이었다. 사실 사울은 예수를 핍박한 적이 없다. 그는 예수를 보거나 만난 적이 없다. 그는 다만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곧 교회를 핍박했을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가 예수님 자신을 핍박했다고 하신 것이다. 아마도 그 후의 사도 바울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론의 근저에는 이 처음 경험이 깔려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놓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이것이 괴로움 이라는 현실이 오히려 기쁨의 감정이 되는 비밀이다. 사도는 복음과 교회, 곧 그리스도 때문에 굶주림, 채찍, 모욕, 억압 등 온갖 종류의 괴로움을 받을 때 자신이 당하는 괴로움이라는 자극이 아니라, 그 괴로움이 갖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하여 그 괴로움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곧 그리스도께서 지금 이곳에 계셨더라면 그분이 당할 고난은 내가 대신 당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것을 사도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나의 육체에 채우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괴로움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을 기뻐할 수 있는 모순을 경험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도에게 있어서 복음을 자랑스러워한다는 말이나 복음을 위한다는 말,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스러워한다는 말이나 그리스도 예수를 위한다는 말, 그리고 교회를 위한다는 말은 결국 같은 말이다. 복음은 곧 그리스도 예수를 말하는 것이다. 앞에서 이미 언급하였듯이 사도가 자기는 복음의 일군이라고 하는 것과 교회의 일군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의 일군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같은 말이다. 복음이 다름 아닌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고, 복음의 내용이 다름 아닌 그리스도 예수이고, 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한다는 것은 곧 복음을 위하여 산다는 말이다. 그가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의 서두에서 분명히 밝힌 자기 고백도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선언이었다(롬1:16).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은 소극적인 표현을 통하여 그 반대를 극도로 강조하는 수사학적 전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즉 복음을 자랑스러워 한다는 강조인 것이다. 디모데는 사도 바울이 30년 가까이 복음사역을 같이 하며 지내는 동안 참 아들처럼 여기게 된 사람이었다(딤전1:2, 딛1:4). 사도가 눈앞에 닥쳐온 이 땅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그와 함께 하고 싶을 만큼 각별한 사람이었다(딤후 4:9, 21절). 그런 디모데에게 바울이 유언처럼 부탁하고 경고하는 말도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혀 고난을 받는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히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것이었다(딤후1:8). 사도는 그것을 두고 현재는 창피하지만 참고 견디어야 한다는 의미로 말하고 있지 않다. 현재도 그것이 자랑이라고 굳게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을 자랑하고 있다. 그래도 예수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보다는 사업이 잘 되어야 떳떳하게 예수 믿으라고 전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자녀가 일류학교에 문제없이 진학해서 간증거리가 있어야 신앙 생활하라는 말을 자신 있게 하지 않겠느냐는 태도는 턱없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데도 사업이 잘 안되고, 일이 꼬여도 그것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당당하게 예수를 자랑스러워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신자의 능력이고 자랑이다. 그리고 “족한 은혜”이다.

  • 정창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설교자하우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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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의인은 제 길을 간다

세상이 이런데 언제까지 이러실 거냐고 따져 묻는 하박국에게 결국 하나님은 이렇게 되물으신 셈이었다. 세상이 이런데 너는 어떤 길을 갈 거냐고. 악인들로 세상이 뒤집어지고 있을 때 너는 어떤 길을 갈 거냐고. 그리고 하나님이 스스로 주신 답은 그것이었다. “의인은 그래도 제 길을 간다!” 세상이 어떻게 뒤집어져도, 신자는 여전히 제 길을 간다!

빌레몬서 본문묵상과 탐구(9/9)

바울이 받아들이고 있는 오네시모와 실제 그가 처하여 있는 법률적 사회적 상황에서 오네시모 사이에는 극심한 모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범죄하고 도주한 노예이지, 영원히 함께 할 사랑하는 형제는 아니다. 이것은 어떤 점에서 바울의 오네시모와 빌레몬의 오네시모 사이의 차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도 바울은 오네시모를 그가 처해있는 사회적 상황과는 전혀 다른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근거가 무엇인가?

빌레몬서 본문묵상과 탐구(8/9)

8절에 이르면서 사도는 본격적으로 빌레몬을 향한 용건을 밝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 편지의 남은 부분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8절을 “그러므로”로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앞에서 빌레몬에 대한 소문을 근거로 그를 칭찬했던 것도 사실은 이 용건을 효과적으로 성취하기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오네시모를 위한 부탁이었다.

빌레몬서 본문묵상과 탐구(7/9)

오네시모를 통해서도 빌레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빌레몬에 대한 소문을 들은 사도는 그에게 편지를 쓰는 용건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는 첫 마디에 감격에 차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기도할 때마다 너를 기억하고, 언제나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4절). 사도에게 있어서 빌레몬은 기도할 때마다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고 싶어지고, 그가 생각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가 터져 나오는 신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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