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빌레몬서 큰 그림보기(5/9)

자랑이 만들어내는 행동들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감옥에 갇힌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그 자랑스러움은 단순히 감정적 차원에 머무르고, 심리적 차원의 효과를 만들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감옥에 갇혀있다는 사실이 수치가 아니라 오히려 자랑거리가 되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은 감옥 안에서도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는 일에 집착한다. 그래서 얻은 사람이 오네시모이다. 그는 감옥에 죄수로 있을 때는 동료죄수에게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 사람도 자기처럼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며 사는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오네시모는 그렇게 되었다. 빌레몬서에서 바울이 빌레몬을 향하여 오네시모가 지금은 어떤 사람이며, 그를 어떻게 여기는 것이 옳은가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이러한 삶은 감옥의 동료 죄수만이 아니라, 감옥의 간수를 향하여도 그대로 나타난다. 빌립보 감옥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 16장은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사도 바울은 발이 차꼬에 채워진 채 깊은 감옥에 갇혀있는 처지이면서도 동행하고 있던 실라와 함께 깊은 밤에 다른 죄수들이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크고 분명하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한다.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고, 죄수들의 사슬이 다 풀어졌다. 모든 죄수들이 다 탈옥을 했을 것이 분명한 이 상황에서 간수는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죄수들을 놓친 책임을 감당하려고 하고, 이 때 도망치지 않은 사도 바울이 소리를 질러 그의 자살을 막았다. 이들이 탈옥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한 간수가 그 자리에서 본능적으로 나타낸 반응은 그것이었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30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말과 태도로 간수는 이 두 사람을 대하고 있다. 자기의 손아귀에 있던 자들을 선생이라 부르고, 사형의 죽음을 앞두고 있을지도 모를 죄수에게 구원의 길을 묻고 있는 것이다. 간수는 그런 처지에서도 밤이 깊은 줄 모르고 기도하고 찬송을 하더니, 이런 절호의 기회에도 도망가지 않고 있는 사도 바울과 실라의 모습에서 세상의 상식과 풍조와는 전혀 다른 원리로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그가 본능적으로 던진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라는 말로 사실 간수는 이렇게 묻고 싶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생명을 건지는 일에 연연하지 않고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당신들은 무엇인가 다른 세상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요. 어떻게 하면 나도 그런 멋진 삶을 사는 사람이 될 수 있겠소? 무엇이 당신들을 그렇게 만들었소? 나도 당신들처럼 그렇게 될 수 없겠소?” 무엇이 바울과 실라를 이렇게 사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가? 주 예수이다. 자랑스러운 주 예수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간수의 간청에 가까운 질문에 대한 바울의 즉각적인 대답은 분명하고도 단호하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바울의 최대의 관심은 여전히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 일로 죄수를 놓쳤다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살을 하려 했던 이 간수는 든든히 지키라는 명령을 받은 이 죄수를 두려움도 없이 집으로 모셔다가 한 상 잘 차려 대접하고, 주 예수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온 집안이 구원을 받고 온 집안에 큰 기쁨이 넘쳤다. 이 죄수는 간수 앞에서도 두려움도 없고, 위축됨도 없이 예수를 자랑하여 그 사람도 자기와 같이 예수로 자랑스러워하고 기뻐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행동을 서슴없이 한 것이다.

간수에게 만이 아니다. 그가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 재판 받는 피고인으로 선 자리에서도 그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바울 자신과 같은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이 되기를 당당하게 권하는 것이다(행 26:29절). 용감하게 살자고 결심해서가 아니라, 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최고의 자랑이요, 최우선의 가치이기 때문에 그것이 만들어낸 열매이다. 빌립보서 1장에는 감옥에 있는 바울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감옥에 갇혀 있다. 그래서 마음대로 다니며 예수를 증거하고 자랑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을 대신하여 더 열심히 예수를 전파한다(빌1:14절). 그러나 다른 어떤 사람들은 바울을 약올리고 괴롭게 하려는 못된 심산으로 경쟁적으로 열심히 복음을 전하면서 그렇게 못하는 감옥의 바울을 조롱한다(17절). 아무튼 바울은 아무 일도 못하고 갇혀있다. 그런데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 자신은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말한다(18절). 그 이유는 자기는 어떻게 되든지 자기가 감옥에 갇힌 것 때문에 그리스도가 전파되기 때문이라고 한다(18절). 그는 언제나 삶의 원리와 원동력이 그리스도와 그가 맺고 있는 관계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그가 “그리스도 때문에”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당하는 현실이면 그것이 감옥이든, 고난이든 무엇이든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그가 그리스도를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열매들이다.

정창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설교자하우스 대표)

정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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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의인은 제 길을 간다

세상이 이런데 언제까지 이러실 거냐고 따져 묻는 하박국에게 결국 하나님은 이렇게 되물으신 셈이었다. 세상이 이런데 너는 어떤 길을 갈 거냐고. 악인들로 세상이 뒤집어지고 있을 때 너는 어떤 길을 갈 거냐고. 그리고 하나님이 스스로 주신 답은 그것이었다. “의인은 그래도 제 길을 간다!” 세상이 어떻게 뒤집어져도, 신자는 여전히 제 길을 간다!

빌레몬서 본문묵상과 탐구(9/9)

바울이 받아들이고 있는 오네시모와 실제 그가 처하여 있는 법률적 사회적 상황에서 오네시모 사이에는 극심한 모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범죄하고 도주한 노예이지, 영원히 함께 할 사랑하는 형제는 아니다. 이것은 어떤 점에서 바울의 오네시모와 빌레몬의 오네시모 사이의 차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도 바울은 오네시모를 그가 처해있는 사회적 상황과는 전혀 다른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근거가 무엇인가?

빌레몬서 본문묵상과 탐구(8/9)

8절에 이르면서 사도는 본격적으로 빌레몬을 향한 용건을 밝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 편지의 남은 부분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8절을 “그러므로”로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앞에서 빌레몬에 대한 소문을 근거로 그를 칭찬했던 것도 사실은 이 용건을 효과적으로 성취하기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오네시모를 위한 부탁이었다.

빌레몬서 본문묵상과 탐구(7/9)

오네시모를 통해서도 빌레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빌레몬에 대한 소문을 들은 사도는 그에게 편지를 쓰는 용건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는 첫 마디에 감격에 차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기도할 때마다 너를 기억하고, 언제나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4절). 사도에게 있어서 빌레몬은 기도할 때마다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고 싶어지고, 그가 생각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가 터져 나오는 신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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