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빌레몬서 본문묵상과 탐구(7/9)

그리스도 예수를 위한 열심으로

감사와 축복, 기쁨과 위로의 진정한 이유(4-7)

사도는 빌레몬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아마도 사도는 골로새에서 온 에바브라에게서 빌레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골1:7-8, 4:12). 그러나 오네시모를 통해서도 빌레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빌레몬에 대한 소문을 들은 사도는 그에게 편지를 쓰는 용건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는 첫 마디에 감격에 차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기도할 때마다 너를 기억하고, 언제나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4절). 사도에게 있어서 빌레몬은 기도할 때마다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고 싶어지고, 그가 생각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가 터져 나오는 신자라는 것이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단락(4-7절)의 말을 마치고 다음 용건으로 넘어가려 하면서 사도는 빌레몬에게 또 다시 한마디를 덧붙인다. “형제여, 나는 너의 사랑으로 큰 기쁨(great joy)과 많은 위로(much encouragement)를 얻었노라”(7절). 그는 사도 자신에게도 큰 기쁨과 많은 위로의 근거가 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바울은 무엇 때문에 기도할 때마다 빌레몬이 생각나고, 그가 생각날 때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가 되는 것인가? 빌레몬의 무엇을 가지고 사도는 큰 기쁨과 많은 위로를 얻고 있는 것인가?

사도가 빌레몬에 대하여 들은 소문은 그의 신자로서의 삶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빌레몬이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5절). 이것은 주 예수와 모든 성도에 대하여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말일 수도 있으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your faith in the Lord Jesus)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your love for all the saints)을 교차대구법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러나 골로새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는 교차대구법적으로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라고 이 둘을 명백히 구별하여 말하고 있다(골1:4). 그러므로 사도가 빌레몬에 대하여 그렇게 감격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가 그리스도에 대하여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모든 성도들을 향하여 사랑을 베풀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이다. 또한 빌레몬이 성도들을 향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도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빌레몬을 위하여 간구하는(4절) 이유일 뿐만 아니라, 사도 자신이 큰 기쁨과 많은 위로를 얻는 근거가 되고 있다고 사도는 선언하고 있다(7절). 6절은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사도가 빌레몬을 인하여 드리는 간구를 밝히고 있다. 6절은 빌레몬서 가운데 그 해석이 가장 난해한 구절로 인정되고 있으나, 다음과 같은 번역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대가 우리와 더불어 누리는 믿음의 사귐이 효력을 내어서 우리가 그리스도께 가까이 나아갈 때에 우리가 받게 되는 복이 무엇인지 그대가 충분히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표준 새번역). “믿음을 통한 우리의 교제가 힘이 되어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우리의 축복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기를 나는 빕니다”(공동번역).

결국 사도의 감격과 감사와 기쁨과 위로의 결정적인 근거는 빌레몬이 사도에게 무슨 이익을 주었는가, 두 사람 사이에 무엇이 오고 갔는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었다. 빌레몬과 그리스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빌레몬의 삶이 어떠한가로 말미암는 것이었다. 그가 사도에게 잘해주었기 때문에 기도할 때마다 생각이 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사도에게 어떤 유익을 주었기 때문에 그를 생각만 해도 감사하고, 마음이 기쁘고, 힘과 용기가 솟아나는 것이 아니었다. 사도의 빌레몬에 대한 관심은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있지 않았다. 그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믿음과 사랑의 행위가 바울을 그렇게 감격하고 감사하고 기쁘게 했던 것이다.

사도 바울의 이러한 모습은 문득 안디옥 교회가 부흥을 시작하자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안디옥에 파송되어 안디옥 교회를 보며 기뻐하던 바나바를 떠올리게 한다. 바나바가 안디옥에 도착하여 가진 최우선의 관심은 교회가 그렇게 부흥을 이루는 현상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것이 그의 기쁨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를 보고 기뻐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지위나 대우나 목회철학의 성취에 일차적인 관심과 즐거움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에게 맡겨진 신자들이 주님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살게 할 것인가에 관심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안디옥의 수많은 신자들을 위로하고 권면하는 것은 한 마디였다.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있으라!”흔들리지 말고, 전심을 다하여 주님과의 관계를 붙잡으라는 가르침이다. 참된 목회자에게는 교인들이 나와 무슨 관계를 맺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주님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언제나 가장 중요한 관심거리가 되는 법이다.

본문에서 드러나는 사도 바울의 모습 곧, 빌레몬이 바울 자신을 어떻게 대접하는가가 아니라,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가를 기쁨과 감사의 근거로 삼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청중을 도전하는 설교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기도할 때마다 지극한 감사의 제목으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왜 그가 그렇게 감사하고, 그 사람을 생각하면 마음이 기쁘고, 또 위로가 되는 것인가? 하나님 앞에서 그를 축복하는 간구를 드리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스도와 다른 성도들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그의 신앙의 성숙 때문인가, 아니면 당신을 잘 대접해주었기 때문인가? 사도 바울은 감사의 제목으로 삼고 있는 것이 당신에게는 그 사람에 대한 시기나 비난의 제목으로 등장하지는 않는가?” 한편, 빌레몬을 보는 바울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빌레몬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메시지를 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도 누구에겐가 빌레몬처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성도들에 대한 사랑으로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있는가? 우리도 우리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으로 누구에겐가 큰 기쁨과 많은 위로를 주는 소문의 주인공이 되고 있는가?

* 정창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설교자하우스 대표)

정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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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의인은 제 길을 간다

세상이 이런데 언제까지 이러실 거냐고 따져 묻는 하박국에게 결국 하나님은 이렇게 되물으신 셈이었다. 세상이 이런데 너는 어떤 길을 갈 거냐고. 악인들로 세상이 뒤집어지고 있을 때 너는 어떤 길을 갈 거냐고. 그리고 하나님이 스스로 주신 답은 그것이었다. “의인은 그래도 제 길을 간다!” 세상이 어떻게 뒤집어져도, 신자는 여전히 제 길을 간다!

빌레몬서 본문묵상과 탐구(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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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서 본문묵상과 탐구(8/9)

8절에 이르면서 사도는 본격적으로 빌레몬을 향한 용건을 밝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 편지의 남은 부분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8절을 “그러므로”로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앞에서 빌레몬에 대한 소문을 근거로 그를 칭찬했던 것도 사실은 이 용건을 효과적으로 성취하기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오네시모를 위한 부탁이었다.

빌레몬서 본문묵상과 탐구(7/9)

오네시모를 통해서도 빌레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빌레몬에 대한 소문을 들은 사도는 그에게 편지를 쓰는 용건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는 첫 마디에 감격에 차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기도할 때마다 너를 기억하고, 언제나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4절). 사도에게 있어서 빌레몬은 기도할 때마다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고 싶어지고, 그가 생각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가 터져 나오는 신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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