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성령강림 주일을 향하는 7주간 시리즈 설교(제2주)

설교실제(1)

다음 설교는 사도행전 1:8의 그리스도의 성령강림에 대한 약속을 중심으로, 성령의 오심과 그로 말미암은 능력에 초점을 맞추어, 주님이 말씀하신 성령이 오시면 주어지는 그 능력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밝히는데에 초점을 맞춘 설교이다.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약속하신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받는다는 “능력”을 오해하거나 착각하는 경향이 신자들 가운데도 강하게 있는 현실을 의식하고 본문이 말하는 능력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도록 하려는 목적으로 시도한 설교이다.

제목 : 우리가 받은 능력
본문 : 사도행전 1:4-8

도입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요약하면 세 마디입니다. 첫째,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신다. 둘째,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는다. 셋째, 권능을 받으면 너희는 땅 끝까지 가서 내 증인이 되라. 우리는 주님의 증인이 되어 땅 끝까지 주님의 복음을 증거 하게 된답니다. 그런데 그것을 위해서 성령님이 주시는 권능이 있어야 된답니다. 이 권능은 무슨 권능일까요?

성령이 주시는 능력이란 무엇인가?
성령이 오시면 주신다는 그 능력은 구체적으로 무슨 능력인가? 본문만 가지고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말씀을 안 하셨기 때문입니다. 능력을 받아서 증인이 된다고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의 고별설교에서도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거기는 분명합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왜 보내시는지, 성령이 오시면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 심지어는 그 성령의 이름까지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자세하게 설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승천하실 때 성령을 약속하시면서는 그냥 능력이라고만 하셨지 무슨 능력인지 말씀을 안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능력에 대한 자기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이 능력을 말하곤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그 능력을 주실 것이라고 믿고, 그 능력을 사모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능력이란 무엇입니까? 죽이는 사람은 죽임 당하는 사람보다 능력이 있고, 1등을 하는 사람은 꼴등하는 사람보다 능력 있고, 병을 고치는 사람은 병을 고침 받는 사람보다 언제나 능력이 있고, 감옥에 집어넣는 사람은 감옥에 갇히는 사람보다 능력이 있고,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보다 더 능력이 있고, 큰 것은 작은 것보다 언제나 능력이 있고…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성령 충만 받고 능력 받으면 가난했던 사람이 부자가 되어야 하고, 감옥에 갇혔던 사람이 뛰쳐나와야 되고, 비천했던 사람이 높은 지위에 저절로 올라가야 되고, 공부를 안 해서 빵점 받던 내가 성령의 능력 충만해서 가면 답안지가 술술 보여서 100점을 받아야 되고… 그런 식으로 성령 충만으로 말미암은 능력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능력 받자. 능력 받자. 능력을 받으면 무엇이든지 잘 할 수 있다” 하며 능력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말한 능력이 과연 그런 것일까요? 예수님이 8절에서 성령이 임하시면 능력을 받는다고 말씀하신 그 능력이 구체적으로 무슨 능력인가를 알 수 있는 길은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제자들이 이 약속된 능력을 받은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났고, 어떻게 살았는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야 약속하셨던 그 능력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약속하신 성령 강림 사건이 일어난 사도행전 2장 이후의 제자들의 행적을 다 살펴 보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셨던 그 능력의 실체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아, 이것을 말한 것이었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능력의 실체
이러한 눈으로 사도행전을 다 살펴보면 결국 내려지는 결론은 하나입니다. 이 능력은 바로 예수님의 복음의 증거를 위하여는 어떠한 고난도 당해내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즉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는 능력인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 때문에, 예수의 복음 때문에 자기가 죽는 능력입니다. 50여일 전만 하여도, 베드로는 심부름하는 조그마한 계집아이 하나가 와서 “당신도 예수 따라 다녔잖아요. 아저씨도 예수랑 같이 다니던데요.” 하니까, “아냐, 아냐, 난 아냐.”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내가 예수라는 ‘예’자만 알아도 내가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식으로 맹세까지 하면서 부인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시고 성령의 능력이 부어졌습니다. 그러자 그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관원들이 잡아다가 패고 협박공갈하고 “너 예수의 ‘예’자만 얘기해도 죽어” 그러니까, “한번 생각을 해봐라. 내가 너희 앞에서 하나님 말씀 듣는 게 옳겠냐, 살겠다고 너희 말을 듣는 것이 옳겠냐?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야!”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또 붙잡아다 패고 고문하고 “앞으로 조심해! 예수 얘기하지마!”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할렐루야, 할렐루야!” 박수를 치면서 갑니다. “드디어 살았네, 드디어 풀렸네.” 그래서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와! 하나님께서 우리 같은 것들을 예수의 이름 때문에 이렇게 고난 받아도 괜찮을 만한 사람으로 인정을 해주시다니, 이거 기가 막히네. 좋다!”고 박수치고 찬양하면서 그곳을 떠났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내 땅이야, 이것은 내가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내 돈이고, 내가 뼈 빠지게 일해서 사 놓은 내 땅이야.’ 그랬던 사람들이었는데, 성령이 충만하게 임해서 이 능력을 받으니까, 교인 가운데 밥 굶는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 땅을 팔고, 집을 팔아서 갖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내어 놓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밥 굶는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능력을 받으니까, “내 것이야, 이것은.’ 하고 움켜잡았던 손이 쓱 펴지는 것입니다. 스데반을 보십시요. 돌로 맞아 그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데 얼굴이 천사와 같이 되었습니다. 복음 증거 하다가 날아오는 돌을 맞고 돌무더기에 묻혀서, 하던 설교도 다 못마치고 죽었습니다. 죽으면서 하는 말은 이렇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똑같이 합니다. 스데반이 죽는 순간에, ‘아이구 나도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나 한번 해보고 죽자.’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 능력을 받고 보니까 그렇게 된 것입니다. 돌을 던지는 자들을 죽여버리는 능력이 아니라, 그냥 죽음을 당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을 어떤 일을 당할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도들, 교인들도 모두 이러한 원리 아래서 증인으로서의 능력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면 잡혀 투옥될 거요. 가지마세요.” 그러니까, 바울은 말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그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는 나의 귀한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렇게 자기 생명을 내 놓습니다.

증인되기를 포기하지 않는 능력
성령 충만으로 받는 능력은 한마디로 요약하여 말하면, 결국 ‘예수의 이름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증거를 위해서 자기가 죽는 능력’입니다. 자기가 고난당하는 능력입니다. 복음을 증거 하는데 누가 감옥에 가두려하면 가두려하는 자에게 눈만 부릅떠도 그 사람이 엎드러지게 하는 그런 능력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서 기꺼이 감옥에 갇히는 능력입니다. 돌이 날아오면 손바닥을 펴서 그 돌을 유턴을 시켜서 날려 보내어 돌을 던진 자들의 이마에 박히게 하여 통쾌하게 복수를 해주는 능력이 아니라, 그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는 그리스도시다”는 고백을 포기하거나 바꾸지 않는 능력입니다. 돌을 되돌려서 죽이는 능력이 아니라, 그 돌에 맞아 죽어버리는 능력인 것입니다. 결국,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에 대한 고백과 증거를 바꾸지 않는 능력인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성령을 부어주시사 내게도 능력을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면서, 그 능력이란 말을, ‘나도 이제 성령 충만 받고 능력 좀 받아서 그 동안 기죽어서 지내던 거 보란 듯 기도 한번 펴보고, 그 동안 매일 월세금 챙기느라고 쩔쩔맸는데 이제는 그런 걱정 없이 돈도 떼돈으로 한번 벌어보고, 그저 손만 얹어도 앉은뱅이가 벌떡벌떡 일어나서 나도 한번 이름 날리면서 정신없이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집회도 해보고…’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능력을 사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능력, 성령이 충만이 임함으로서 우리에게 임하는 그 능력은 그런 능력이 아니라고 사도행전은 처음부터 강조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증인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증인이 아니라, 예수를 드러내는 증인입니다. 그러므로 이 증인에게는 내가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잘되므로 이 증인의 역사가 잘 이루어진다면 잘 되는 것입니다. 그게 능력입니다. 내가 죽음으로, 가난해지므로 이 증인의 역사가 잘 이루어진다면, 죽는 것이 능력입니다. 가난해지는 것이 능력입니다. 누군가에게 내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 한마디만 들어도 견딜 수 없어서 ‘교회를 그만두네, 마네’ 했던 사람이, 이제는 내 자존심이 아니라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해도 “나는 그만 둘 수 없어” 하고 달려 붙는 그 능력입니다. 40년 된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기적을 행하자 사람들이 떼로 모여들어 나의 추종자가 될 차비를 하고 있을 때에도, “나는 아니라”고 “내가 아니라”고 손을 내저으며 거절하고 예수님에게로 그들의 시선을 돌려놓는 그런 능력입니다. 이전에는 누가 상처 되는 말 한 마디하고, 목사가 조금만 나에게 소홀히 해도 ‘내가 그런 교회 나가는가 봐라. 내가 다시는 일을 하는가 봐라’ 하며 나자빠졌던 사람이 ‘내가 목사 때문에 교회 나가나? 나는 예수님 때문에 일하는 사람이야.’ 하며 더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는 그런 능력입니다. 상처를 받고 아픔을 당하면서도 예수님을 포기하지 않는 능력인 것입니다. 우리가 열렬하게 사모해야 하는 능력은 바로 이런 능력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우리에게 이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알지못하는 신자들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진정한 신자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 그 일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를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증인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내 증인이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 당시 그 현장에 있었던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증인의 일은 계속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28장 31절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늘로 올리워 가신 주님이 그 모습대로 다시 오실 그날까지 오고 오는 제자들의 계속적인 사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사역을 감당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성령이 우리에게 충만히 임하심으로 받는 능력입니다.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신다는 그 능력은 무엇인가? 복음을 위해서, 예수의 이름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는 ‘내가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하고 나서는 그런 능력입니다. 나 자신이 어떻게 되는가가 아니라, 주님이 어떻게 되는가에 촛점을 맞추고, 주님과 그의 복음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당해내는 그러한 능력인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으로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주님의 증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정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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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말하는 증인은 ‘본 사람’이 아닙니다. 구경한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끌어 가시는 구속의 큰 역사, 예수님이 친히 시작하시고 이어가시는 예수의 역사에 참여한 사람, 동참한 사람이어야 증인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멋드러지게 하고, 예수님에 대한 책을 쓰고, 예수님에 관한 영화를 멋있게 만들었어도 그 사람 자신이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면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증인은 예수님의 역사에 자기 자신이 참여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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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오시면 주신다는 그 능력은 구체적으로 무슨 능력인가? 본문만 가지고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말씀을 안 하셨기 때문입니다. 능력을 받아서 증인이 된다고만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능력에 대한 자기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이 능력을 말하곤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그 능력을 주실 것이라고 믿고, 그 능력을 사모합니다.

부활절 이후 7주간 성령설교(제1주)

그런데 주님은 이들에게 아주 중요한 약속을 확실하게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너희에게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보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명령을 하십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는 땅 끝까지 가서 나의 증인이 되라.” 이렇게 말씀하신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땅에 남겨놓으시고 그냥 가셨습니다. 고아처럼 버려 두지 않으시겠다고 하던 주님이 고아처럼 버려두고 가셨습니다. 기약도 없이 때도 없이 주님이 떠나가셨습니다.

부활절 설교- 사망을 이기고 부르는 노래

하나님이신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께서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부활하신 것입니다. 죽음이 역사적 현실이고 구체적 사건이고 개별적 경험이듯이, 부활도 구체적 사건이요 역사적 현실이요 개별적 경험입니다. 죽음의 시체가 거기 있었듯이, 부활한 몸체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부활을 말씀하면서 그것은 당연히 죽음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전제하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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