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또 하루

   제 1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산 사람들

                             (6:1~11)

은혜로 죄를 합리화하는 궤변을 그치라!” (6:1~2)

사도는 앞 장에서 우리가 죄에서 구원을 받은 것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을 밝히는 일에 진력 하였습니다. 그리고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그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죄 된 본성을 가진 우리 인생들이, “그렇다면 은혜를 더 받으며 살기 위하여 계속하여 더 죄를 지으면 되겠군요!”하는 식의 궤변으로 이 진리를 왜곡할 수 있음을 직감하고 그 문제를 다루기 시작합니다. 사도는 한 마디로 단언합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우리는 더 이상 죄와 관계가 없는 사람, 즉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었다는 면에서 볼 때도 그렇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은혜를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관점에서 볼 때도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새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고”(4절), “다시는 죄에서 종노릇하지 않게 하려고”(6절), 그리고 “죄에서 벗어나게 하려고”(7절) 우리에게 그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 더 깊은 묵상

당신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을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그럴 듯한 명분을 찾는 자세로 대하지는 않습니까?

네 자신을 알라!”- 신자의 자기 인식 (6:3 ~11)

사도는 우리가 받은 은혜의 핵심이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산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부터 설명합니다.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였다는 것이고, 그 구체적인 내용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죽으심이요, 살으심(부활)은 하나님에 대하여 산 것이 그 본질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그 은혜를 받음으로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죄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산자가 된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은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게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죄의 권세의 영역에서 벗어났다는 말이요, 하나님에 대하여 살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의 영역으로 옮겨졌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에 근거하여 사도는 우리가 자기 인식을 분명히 할 것을 촉구합니다.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자로 여길지어다!”(11절)

■ 더 깊은 묵상

고백은 “나는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산자”라고 하면서, 실제의 삶에서는 “죄에 대하여 살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죽은 자”처럼 모순된 행동을 한 경우들이 당신에게는 없었습니까?

정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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