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승리의 비결

여호수아 1:6-9

정창균(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승리의 비결”입니다. 하루하루 주님을 의지하며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면 되지 무슨 승리의 비결 같은 것에 관심을 갖는가 하실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승리의 비결이 있다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위기에 처한 현실
모세가 죽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은 모세 밑에서 참모 노릇만 잘 하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자기가 결정하고 자기가 책임져야 하는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된 것입니다. 지난 40년 동안 그 꿈 하나 갖고 지내온 그 약속의 땅이 건너편에 있습니다. 이제 이 백성을 이끌고 그 땅에 들어가야 하는 책임을 걸머져야 합니다. 들어가야 할 그 땅은 그냥 걸어 들어가서 이곳저곳 말뚝 박고 문패 달고 이것은 내 땅, 그것은 네 땅하고 사이좋게 나누어차지하면 되는 땅이 아닙니다. 이미 철병거로 무장한 가나안 족속들이 정착하고 있는 땅입니다. 목숨을 건 정복전쟁을 해야만 합니다. 여호수아는 매우 불안하고 두렵고 난감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명령
그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여호수아를 일대일로 대면하고 말씀하십니다. 위로와 약속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매우 중요한 명령을 내어 놓으십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6절에서 9절까지에 있는 말씀이지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 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담대하라
긴 말씀이지만 이 명령의 핵심은 아주 간단하고 분명합니다. 한 가지입니다.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덟 번씩 반복하면서 이 말씀을 극도로 강조하십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하라.”(6절)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라.”(8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9절) “두려워말며 놀라지 말라.”(9절). 무슨 말일까요? 그냥 막연하게 마음을 독하게 먹어라. 용기를 가져. 힘내. 용기를 내. 이런 말일까요? 무엇을 두려워하지 말란 것일까요? 무얼 하는데 마음을 강하게 하고, 무얼 하는데 극히 담대히 하라는 말일까요? 이것은 막연한 말이 아닙니다. 본문을 찬찬히 읽어보면 분명해집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가운데 기록한 말씀을 지켜 행하는 일에 강하고, 담대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상황에서 주어지는 이 명령이 어떻게 생각되세요? 말이 됩니까? 지금 눈앞에 닥친 당장 해결해야 될 시급한 문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아무도 없는 땅에 가서 말뚝 박고 새끼줄 치고 이것은 네 땅, 이것은 내 땅 그러면 되는 땅이 아닙니다. 가나안은 신천지를 개척하기 위하여 꿈을 안고 들어가는 땅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호수아가 알고 있고,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이미 철병거로 무장한 정착민이 지배하고 있는 땅에 쳐들어가는 것입니다. 전쟁이 전제 되어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당장 급한 것은 어떻게 가나안에 들어가서 저들과 싸워 이길 것인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대비책이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이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러므로” 하고 하셔야 될 말씀은 뭐 이런 내용이어야 되겠지요. “그러므로 너희는 지금부터 18세 이상의 청년들을 모아서 특수 훈련을 시켜라. 그리고 금모으기를 해서 그걸로 군비를 비축하라. 사관학교를 만들어서 특수 공격 부대를 양성하라. 그들은 동쪽이 약하니까 슬쩍 동쪽으로 가는 척하다가 주력부대는 서쪽으로 가서 그곳을 쳐라.” 뭐 이런 전력이든지, 전략이든지, 전술이든지, 전투력이든지, 군비든지, 이런 얘기가 주어져야 맞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시급한 상황에 나타나셔서 하시는 말씀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준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이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입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강조하십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정말 세상 물정도 모르고, 상황파악도 못하는 뚱딴지 같은 명령이요, 답답한 훈수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승리의 비결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하라는 말씀이 무슨 말이며, 이것이 전쟁을 치루어야 하는 이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사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셈입니다. “너희 눈앞에 현실로 닥친 그 중대하고 시급하고 두려운 그 일을 성공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너희의 전투력이 아니다. 너희의 전략이 아니다. 전술이 아니다. 너희의 군비가 아니다. 나와의 관계를 어떻게 맺고 갈 것인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승리의 결정적인 비결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맺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나올 때는 그 언어나 문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의 주인이요, 그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 자신을 말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다는 말은 바로 하나님을 순종한다는 말인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생각한다는 말이지요. 말씀이 임했다는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 오셨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하라는 이 말씀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맺으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지금 이들이 직면하고 있는 전쟁과는 상관없는 딴 이야기만 하시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전쟁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 전쟁을 어떻게 하면 승리할 수 있는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승리의 비결이 무엇인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말씀 뒤에 약속의 말씀을 반복적으로 붙여놓으신 것입니다. 7절에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8절에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결국 가나안 정복과 정착의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과 가나안 족속 사이의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문제라고 말씀하는 셈입니다. 가나안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그에게 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에게 신실한 언약을 수행하시는 하나님이 펼쳐내는 운동장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 자주 자주 실수를 하곤 하지요. 눈앞에 닥친 급한 일을 우선하느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맺는 일을 뒷전으로 미루는 것입니다.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던져버립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문제는 점점 더 어려워질 뿐입니다. 문제 해결의 진정한 비결은 하나님께 있는데, 그 하나님을 더 급한 현실문제가 있다면서 버려버리는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다급한 일 순서로 목회를 하고 또 인생을 사는 사람은 언제나 다급한 일 따라잡다가 죽습니다. 여러분 급한 일은 죽는 순간에도 있습니다. 급한 일을 위주로 살 것인가? 중요한 일 위주로 살 것인가?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 일인가를 분별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떤 일에는 목숨을 걸어야 되고 어떤 일은 미련 없이 놓아야 될 일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아무리 다급하고 두려운 일이 닥쳐온다 하여도 언제나 가장 중요한 일, 가장 근본적인 일, 가장 본질적인 일, 최우선의 일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맺는 일입니다. 거기에 승리와 성공의 비결이 있습니다.

담대해야 하는 이유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과 관계를 바로 맺으며 사는 일에 담대하라고 여덟 번 씩 반복하며 강조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왜 그것을 하는 데에 이렇게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말라, 강하라, 극히 담대하라, 마음을 강하게 하라고 마치 소나기를 쏟아 붓듯이 말씀하시는 걸까요? 전쟁을 앞둔 현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 곧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맺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앞세우며 사는 것이 그렇게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증거입니다. 그렇게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지요. 많은 사람이 눈앞에 닥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사는 세상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맺는 것을 앞세우며 산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거스려야 되는 일이지요. 그러니 그것은 대단한 용기와 담대함을 발동해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맺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그렇게 살려고 하면 많은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본인도 심리적으로 매우 두렵고 불안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도 그렇게 살도록 가만히 놓아두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사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살아야 되니까, 다른 사람들이 붙잡고 사는 가치와는 다른 가치를 가지고 살아야 되니까, 왕따를 당해야 되고, 고통을 당해야 되고, 손해를 봐야 되고, 소외를 당해야 되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자라고 무시당해야 하고, 외로움을 견뎌야 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는 담대해야 합니다. 마음을 극히 담대히 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놀라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눈에 보이는 안전을 확보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게 되고 그러다보면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고 그래서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상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 세상은 음란하고 죄 많은 세상이고, 이러한 세상에서 미움 받는 것이 두려워서 살아남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면 자연히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부인하게 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려면 강하고 담대하고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절대신뢰
그것은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니까 6절 7절 8절 9절은 온통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내용들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나와도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떠나지 않으시고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그 땅을 주겠다고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대로 우리가 땅을 얻게 하신다. 내가 하나님 최우선의 신앙으로 살면 하나님이 내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하신다. 나의 길을 형통하게 하신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대하여 절대적으로 순종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 외에 아무 것도 두렵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외에 모든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다급한 일이 벌어지고, 아무리 겁나는 현실이 닥쳐도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맺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으며 사는 담대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혼자서 거대한 시대의 흐름을 뒤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혼자서라도 시대의 거대한 흐름을 거역하는 삶의 길을 걸어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뒤를 이어 사역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맺는 일에 담대 하라는 이 말씀을 들은 여호수아가 사역을 마치는 고별 설교에서 그렇게 말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너희는 다 너희 조상이 갔던 길을 따라 가든지 너희 조상이 섬겼던 다른 신을 섬기는 길로 가든지 마음대로 하라. 그러나 너희 모두가 그 길을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 길을 가는 것이 유익이라고 생각하고, 그 길을 가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생각하고, 그 길로 가지 않고는 이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 길을 간다 할지라도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다.” 나 한 사람이 시대의 흐름을 뒤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순종하면서 이 시대를 거역하는 길을 갈 수는 있습니다.

승리하는 인생을 위한 부르심
우리는 그 길을 가도록 불림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흐름을 거역하며 하나님 편에 서서 살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은 간이 커서가 아닙니다. 성격이 독해서가 아닙니다. 선천적으로 용기를 타고 나서가 아닙니다. 사람이 사는데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가를 알기 때문입니다. 승리하는 인생의 진정한 비결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과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살아가는 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과의 전쟁을 앞두고 여호수아에게 주셨던 그 약속의 말씀은 오늘 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주시는 약속입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 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맺고 사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영원한 약속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담대한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도, 좌절의 현실 가운데서도, 위험이 닥치는 현장에서도 당당하고 자신만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삶을 살도록 불림을 받았습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맺고 사는 일에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가 승리하는 인생을 사는 비결입니다.

정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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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주일을 향하는 7주간 시리즈 설교(제2주-1)

성경에서 말하는 증인은 ‘본 사람’이 아닙니다. 구경한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끌어 가시는 구속의 큰 역사, 예수님이 친히 시작하시고 이어가시는 예수의 역사에 참여한 사람, 동참한 사람이어야 증인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멋드러지게 하고, 예수님에 대한 책을 쓰고, 예수님에 관한 영화를 멋있게 만들었어도 그 사람 자신이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면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증인은 예수님의 역사에 자기 자신이 참여한 사람입니다.

성령강림 주일을 향하는 7주간 시리즈 설교(제2주)

성령이 오시면 주신다는 그 능력은 구체적으로 무슨 능력인가? 본문만 가지고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말씀을 안 하셨기 때문입니다. 능력을 받아서 증인이 된다고만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능력에 대한 자기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이 능력을 말하곤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그 능력을 주실 것이라고 믿고, 그 능력을 사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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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주님은 이들에게 아주 중요한 약속을 확실하게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너희에게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보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명령을 하십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는 땅 끝까지 가서 나의 증인이 되라.” 이렇게 말씀하신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땅에 남겨놓으시고 그냥 가셨습니다. 고아처럼 버려 두지 않으시겠다고 하던 주님이 고아처럼 버려두고 가셨습니다. 기약도 없이 때도 없이 주님이 떠나가셨습니다.

부활절 설교- 사망을 이기고 부르는 노래

하나님이신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께서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부활하신 것입니다. 죽음이 역사적 현실이고 구체적 사건이고 개별적 경험이듯이, 부활도 구체적 사건이요 역사적 현실이요 개별적 경험입니다. 죽음의 시체가 거기 있었듯이, 부활한 몸체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부활을 말씀하면서 그것은 당연히 죽음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전제하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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